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

최근 이오공감에 실린 글을 읽다가 한가지 에라 코드를 발견했는데 그것은 민주주의의 반대는 독재라고 생각한다는 사실이다.

사실 우리나라의 민주주의 역사는 한민족 반만년 역사안에 50년 남짓이고 그 민주주의의 성숙 과정에 있어서 가장 큰 해악을 끼친것은 독재가 분명하다, 대통령과 왕을 착각하는 사람들이 집권했을때의 해악은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 이승만이 그랬고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하지만 분명히 하자면 민주주의의 포지션은 독재의 반대에 서 있는것이 아니라 독재와 중우정치의 가운데 위치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중우정치를 예방하기 위해 많은 전문가들을 고급 공무원으로 발탁하고 요소요소에 배치하여 그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여기서 sonnet님의 명문을 한구절 갖고 와 보도록 하겠다.

깨놓고 말하자면 현대 민주주의는 "그런" 국민의 의사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투표에 의한 선출과 의사결정, 다수결 원칙 같은 것은 현대 민주주의의 한 요소에 불과하지 현대 민주주의 그 자체는 아니다. 거기에는 이 문제에 타협점을 찾아내기 위한 대의민주주의, 절차적 민주주의, 견제와 균형의 원리 등 많은 고려가 숨어 있다.


고대 그리스의 직접민주정에서는 전문가라는 것이 없었다. 그리스 시민은 정치, 군사, 사회, 경제, 예술에 모두 일정한 소양을 갖춘 교양인일 것을 요구받았다. 이들은 광장에 모여 긴 시간 토론하고 시민들 중에서 지도자나 장군을 뽑아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의 사회에서는 토론을 주도하는 웅변술이야말로 시민의 중요한 자질이었다.
그러나 조금 다른 각도에서 보면 그리스 직접민주정은 일반 국민은 정치에 참여하지 못하고, 전문가가 모든 의사결정을 하는 체제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들은 누구나 정치가, 장군, 외교사절의 일을 할 수 있도록 폭넓은 교양을 훈련받은 전문가들이었다. 그리고 시민들 밑에는 그런 교육을 받지 못하고 참정권도 없는 다수의 노예가 사회를 떠받치고 있었던 것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 유럽의 중세가 끝나고 유럽과 북미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새 민주주의가 태동하였다. 민주주의란 이름은 같았으나 그 실제를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일단 도시국가 대신 국민국가가 형성되면서 권리를 가진 시민의 수가 훨씬 많아졌다. 따라서 이들이 모두 일상적인 토론과 정책결정이 참여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사회가 훨씬 복잡해졌기 때문에 각 부문의 의사결정에 전문지식을 연마한 전문가들의 필요성이 폭증하였다. 따라서 이들은 대표를 뽑아 대표들에게 의사결정 권리를 위임하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를 만들었다.

대의 민주주의는 시민이 모두 매일매일의 의사결정에 참여할 수 없기 때문에 만든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은 사실 작은 이유랄까 명분에 불과하다. 현대과학기술의 도움을 받으면 그런 문제는 극복 못할 것도 없다. 국회를 없애고 전 국민이 핸드폰을 들고다니다가 아무 때나 "10분 안에 투표하세요. 보기1..." 문자가 오면 답문을 보내 의사결정을 한다고 해보자. 그게 궁극적인 직접 민주주의겠는가?

민주적 의사결정과정에는 주권자인 시민이 사회를 위한 의사결정에 필요한 다양한 배경지식과 수준높은 판단력을 교양으로 갖고 충분한 시간 토론을 거쳐 장단점을 밝히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고대 그리스의 시민은 그게 가능했지만 현대민주국가의 시민은 그것이 불가능하다. 현대사회가 필요로하는 수준은 너무 높은데 반해 현대시민의 역량은 그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대의민주주의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권재민 원칙과 전문가의 필요성을 타협해 명분과 실리를 적당히 살려 만든 것이다
.

어느정도 이 글을 보면 감이 잡힐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가 살고 있는 민주주의는 이렇듯 독재 뿐 아니라 중우정치를 견재하기 위한 장치가 마련되어 있는것이다.

하지만 20세기에 이르러 국민의 교육 수준이 높아지고 정보통신과 메스 커뮤니케이션이 발달하면서 낳은 아이러니 한 기류가 있으니 '20세에 xxx를 때려잡은'이라는 타이틀이 그것이다. 민주주의에서 전문가의 중요성은 위의 sonnet님의 글에 잘 나와있지만 국민또한 전문가의 의견에 반대할 수 있는 권리는 갖고 있다. 하지만 많은 국민들은 이 권리를 '전문가가 아무리 반대해도 자기 꼴리는데로 할 수 있는 권리'쯤으로 오해하고 있는것이 사실이다.

결국 이러한 기류는 '국민이 원하는데 전문가들이 반대한다.'라는 것으로 비춰졌고 결국 전작권 환수론에서 보듯이 '국민의 승리지만 국민의 피해.'라는 묘한 결과를 낳았다. 많은 국민들은 전문가의 의견과 조언을 무시하고 얻은 자신들의 승리에 희희낙락했지만 그 댓가는 국방비 소모의 점진적 증대라는 손실만 가지고 왔다. 미국과 한국의 동맹이 아니라 결과적으로 다른곳에 유용하게 쓸 수 있는 리소스를 국방비로 소모해야하는 결과를 불러왔고 사태는 나아진게 없다.

다시 돌아와서 '20세에 xxx를 때려잡은'타이틀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이러한 타이틀을 달기 원하는 사람들은 이미 도처에 널려있다. 20세에 이명박을 때려잡길 원하는 사람, 20세에 서태지를 때려잡길 원하는 사람, 20세에 신해철을 때려잡기 원하는사람, 20세에 조갑제를 때려잡길 원하는 사람...etc

문제는, 어떤 사람을 때려잡기 위한 데이터를 모으는것은, 인터넷이 발달한 지금 굉장히 쉬운 일이다. 공개적으로 욕먹고 있는 이명박에 대해 반대할 이유만 해도 한시간이면 너끈이 50여개는 모을 수 있다. 하지만, 이명박의 정책에 대해 지지하는 고급 공무원의 백서를 분석한다던지 혹은 전문가, 혹은 그의 브레인들의 성향을 분석하고 논리를 깨는것은 무척 힘든일이지만, 이런 노력은 이뤄 지지 않고 있다. 아주 극 소수의 준 전문가들만이 이러한 데이터를 수치화 하고 분석하는 노력을 기울일 뿐, 그외의 '20세에 xxx를 때려잡은'타이틀을 원하는 사람은 이러한 준 전문가들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그들의 이론을 지지하기만 하면 '20세에 xxx를 때려잡은'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예를들면 이글루스에도 남의글 퍼다가 자신을 민주투사로 꾸미는 사람이 있긴 하다.

최근들어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주의를 논하기 전에 민주주의의 일원이 될 자격을 상실해 가고 있지 않은가...민주주의가 요하는 높은 수준의 교양과는 거리가 먼 자신의 취향(이것이야 말로 독재의 본질 아니던가! 극과 극은 서로 상통하는것인가?)에만 몰두한 나머지 타인의 의견을 까고, 또 까는데만 열중한 것이 아닌지...

물론 독재를 반대하는것은 합당한 일이다. 하지만 그전에 자신의 의견을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보는 태도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전문가들이 일치 단결해서 반대하는 경우는 자신의 의견을 돌아볼 좋은 기회다. 대 운하 같은경우도 공식적으로는 찬성하는 전문가가 있을지 몰라도 나는 토목 공학 교수는 커녕 토목 공학조교, 공학도마저도 대 운하가 성공할 것이라는 의견을 내 놓은 사람을 한명도 못봤다. 이것은 자신에게도 통용된다. 국민과 함께 하고 있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들은 반대하고 있는 의견이 있지 않은지 한번쯤 곰곰해 생각해 볼 문제다.

독재의 반대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중우정치다.

by Belphegor | 2008/04/30 22:18 | 말로하는 실험(불평)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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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스칼렛 at 2008/04/30 22:22
근데 니 정치글은 이제 안 쓴대지 않았나?
Commented by 마나™ at 2008/04/30 23:26
사람들이 기본이 되는 정치학 원론 책은 한번도 안 읽고 맨날 방향성 가진 책들과 글들만 보니까 그런 결론이 뜨는듯.
Commented by Belphegor at 2008/05/01 06:49
스칼렛// 술김에(...)

마나군// 기본적인 컨셉의 문제랄까...독재의 반대 포지션을 취하기만 하면 민주열사인줄 아는 사람들이 많지
Commented by 루시앨 at 2008/05/01 10:51
소넷님 트랙백 타고 들렀습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아리스토텔레스의 의견인듯 하면서도 묘하게 다르군요 ^^: 군주정과 독재를 매치시킬수 있다고 가정하면 군주제-귀족정-민주정과 그 타락형태간에 대각선으로 매치되는것 같아요^^;

근대 민주주의의 기본이 된 사상들이 전제하는 합리적 개인은 역사상 존재하고 있는지가 의문입니다;;; 물론 "부르주아"를 그 합리적 개인으로서 분석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슘페터의 사상에 더 가까운 놈들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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